1년차 시작 200일차

정말, 클리셰 같은 말이지만 엊그제 1년차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레지던트를 시작한지 200일이나 지났다니, 믿을 수가 없다. 

그 동안 힘든 일이 참 많았다. 그만둘 뻔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고, 지금 돌이켜본다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다. 

시간이 약이라더니, 고통스러웠던 순간들도 어느샌가 잊혀져 이제는 조금 숨통이 트인 지금 요즘이 1년차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. 이 정도라면 거의 선택적 기억상실증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, 오히려 고통을 잊고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는 것이 되려 내 정신 건강에는 좋지 않을까싶다. 하여 기억들이 내 손가락 사이로 바람따라 흩어져도 이번 만은 억지로 기억을 붙잡지는 않으련다. 

 

소소한 작은 힘듦은 모래처럼 흩어지지만 굵직한 돌들은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손가락 틈 사이를 빠져나가지 못한다. 평생 내 손아귀에 남아있을 것 같은 바위처럼 무거웠던 짐들 몇 가지만 기록에 남겨볼까.

3월 1일부터 거의 2주간 하루에 2시간 씩 잠을 자고,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일에 쏟아부었던 순간은 절대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. 사람이 2시간씩만 자도 온전치는 않지만 살아남을 수는 있구나를 깨달았었다. 넋은 나가고 집중력은 사라지지만 살 수는 있구나. 사람이 어떻게든 의지를 갖고 한다면 죽지는 않을 수 있구나를 알았다. 

1년차의 삶이란 매일매일 반복되는 100미터 달리기이다.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만 절대 그만둘 수 없고 어떻게든 결승선까지 도착해야만하는, 결승선에 도착하지 않는 것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달리기. 늘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결승선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, 100미터조차 뛰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. 지금은 그래도 100미터 달리기를 최대한 남들 도움을 받아가며 걷다가 뛰다가 결국 어떻게든 편한 길을 찾아 결승선에 도달하는 방법은 알지만, 처음 몇 달은 그저 눈물만 흘렸던 것 같다. 

매일 매일 내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생각에 눈물흘렸고, 정말 어느 날은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다 뜯어버릴 뻔 한 적도 있다. 이렇게 노력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면 정말 솔직하게는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토처럼 쏟아져 나올 때도 있었다.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어느 순간 우울증에서 벗어나오지 못하지 않았을까. 

 

인턴 때도 건강을 열심히 챙긴 건 아니어서 건강하지는 않았지만, 이정도로 빈약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. 지금은 몸에 근육이라고는 없이 Typing 할 때 쓰는 hand flexor,extensor 밖에 없을 듯 하다. 앞으로는 조금 더 내 몸을 신경쓰고 몸에 있는 근육을 되살리는 노력을 해볼까 한다. 

두뇌도 마찬가지, 머리 쓴 지가 워낙에 오래되어서 머리 굴러가는데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. 삐걱대는 소리가 옆사람에게까지 넘어갈까봐 걱정이 될 수준이다. 우리 과 정리본 굴러다니는 것 좀 공부 해볼까. 책이라도 조금 더 읽어보고 정리라도 해볼까 싶다. 

 

1년차 200일, 다사다난하게 흘러갔다. 그 동안 애쓴 나 자신에게 박수치고 쓰다듬어주고, 안아주고 싶다. 

나 뿐만 아니라 죽을 것 같은,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젊음에게 한마디 던져주고 싶다. 

참, 열심히 살고 있구나. 참 잘하고 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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